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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제목 바둑의 고향을 여행하다. (5) 

차례

1부. 상박간고(上博簡考) ☞ 1부 '상박간고' 바로가기

2부. 박혁은 바둑이다. ☞ 2부 '박혁은 바둑이다' 바로가기

3부. 음산암각화 ☞ 3부 '음산암각화' 바로가기

4부. 산해경 음산을 취재하다. ☞ 4부 '산해경 음산을 취재하다' 바로가기

5부. 청동기시대 바둑두러 학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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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청동기시대 바둑두러 학교 가다.


[가장 오래된 바둑의 기록이다. 3천년전에도 학교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다.]


위기(圍碁)는 중국 땅에서 나온 오락과 오락 기구를 통칭하는 말이다. 위기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이나 유물도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바둑의 가장 오래된 문헌은 좌전, 방언, 법언, 박물지, 그리고 논어, 안씨가훈 삼국지 태평어람등이다.

이들 자료중 후대의 위서 혐의나 바둑을 특정한 것은 아니라는 이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온갓 잡박한 문헌에서 바둑은 위기, 박혁 등으로 나온다. 위기와 박혁의 문자학적 검토는 기실 중요한건 아니지만 간단하게 살펴는 보자.

圍는 口와 韋의 결합자다. 口는 울타리고 韋는 사람의 발이 서로 대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는 자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에는 보인다. 금문도 넓은 의미에서는 갑골문으로 분류되기는 한다. '설문해자'는 지키는 것이라 한다.

碁는 갑골 금문 양쪽에 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其가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其는 키를 가르킨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말한다. 위기가 바둑을 가르키고 상은대에 위기가 있었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바둑의 개념은 아니라 하더라도 초보적인 바둑개념은 분명 청동기 시대에 있었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다음 글을 보자.


ㅡ丙子卜貞多子其延學(?)不購大雨.
* 延學口木不購笑.


이 기록은 '은허갑골각사류찬' '은허문자집서'' 갑골문자집'을 뒤적여 필자가 찾아낸 것이다. 위 점사는 갑골문 시대의 정통 오분기법중 5기 무정기로 기원전 9세기에서 10세기쯤의 기록이다. 이 글에서 연, 학, 위, 목자를 유의하고 해석을 해보자.


ㅡ 병자일에 점에 물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데(?)은 식별 불가의 한자다. 큰 비를 맞지는 않을까요?



학교라는 말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은허갑골 점사중에 학교라는 말은 분명 있다. 이곳에서 필자의 견해는 뒤로 하고 중국 고문자의 권위자인 '이효정'과 한국의 이병관(공주대 한문학과) 교수의 저술속에서 학자의 의미를 살펴 보자.


'學은 갑골문 금문에 모두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주역이나 글을 가르키던 곳이다.'


그렇다. '금문고림'에는 學과 校는 같은 것이다 했고 '설문'은 깨치는 것이다 하고 있다. 배우는 집단 시설이 이미 3천년전에 있었다는 말이고 이 점사는 그것을 증거 한다.

많은 아이들이라 했다. 그러니 학교다. 아이들이 모여 학교를 가다가 큰 비를 만나지 않을까요? 묻고 있다. 등교 길이 큰 비를 걱정할 정도라면 학교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한 동리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학교를 가고 있고, 길이 멀다면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의 고산족의 고기록에 소년들의 집단 합숙소가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 기록이다. 갑골점사의 어법은 거의가 이분법이다. 좋을까요. 나쁠까요라는 정과 반을 묻는다.


ㅡ 학교에서 口木(위기)으로 웃지는 않겠지요?


購는 갑골문에서 만나는 것, 결합 하는 것, 성교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가지고 웃고 떠들지 안을까 걱정 하는 학부모들의 근심이다. 위목이 놀이 기구라면 위는 울타리고 목은 나무이니 바둑 장기 박혁등 일종의 반상 게임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위목이 위기의 원형임은 금방 알수 있다.

목(木)은 최초의 바둑알이 돌이 아닌 나무를 작게 다듬어 만든 것임을 말한다. 사실 돌 보다는 나무를 다듬어 쓰는 것이 좀더 간편 할 것이다. 후대의 중국의 여타 기록에 나무로 만든 바둑알도 보인다. 위목의 의미를 필자가 위기로 견강부회 하고 있다면 할 말이 없다.

갑골문의 기록은 물경 16만점에 이른다. 은허갑골문의 모든 기록이 취합 되어 만들어진 책자는 7천여 페이지에 이른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 하나를 찾아 내려면 눈으로 스치듯 읽고 지나가는 데만 일주일은 걸린다. 훑어 보는것 만도 그렇다.

중국에 전하는 바둑의 기록과 유물의 상한 연대는 한대(漢代) 2천년 정도다. 문헌은 더욱 후대에 첨삭 부회된 것들이여 이론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은허 갑골에서 바둑을 특정 할 수 있는 글자가 나왔다는 것은 문헌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일치된 특이한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필자의 이 은허문자의 감식(?)이 바둑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 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연구가 필요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필자의 바둑에 대한 문헌의 탐색을 통한 필자의 생각은 이 기록이 바둑을 말하는 것이 분명 하다고 생각 한다. 이 기록에 대한 진진한 검토를 제안한다.


▲ (왼쪽) 王勿比鬼. (오른쪽) 貞使人于沚.
왕이 귀신이 돕는 점을 얻었다. 점치는 사람으로 하여 점괘를 뽑게 했다.
[출처- 은허갑골사류찬(도효수), 해석- 이청] 



TYGEM / 이청(바둑사학자)

추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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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0/최대 200자

草堂居士   0 2011.09.01
흥미롭습니다. 그 옛날에 바둑을 두었다? 아마도 고누나 비슷한 놀이였겠지만 바둑 비슷한 정도까지 발전했을 수도 있지요. 예를 들어 9줄이나 11줄 바둑이라든지요.

아무튼 이런 기록을 찾아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앞으로 학자들이 많이 연구해야 할 과제로 봅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안동흑표범   0 2011.09.01
그림 글씨로 표구 족자하나 쓴거 갖고 싶네요. 소뼈에 글씨를 새기면 멋질거 같습니다.
기력33년   1 2011.09.17
이런 좋은 글이 있었네요. 처음부터 읽고 앞으로는 자주 와서 공부해야하겠구요. 감사합니다.
하얀유나   1 2011.09.20
이청님 쵝오 !!! ㅋㅋ
덜컥이   0 2011.12.28
초당 조 인간은 겸손과는 상극인듯..^^
켈리케리   0 2012.01.2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도현왕   0 2012.05.31
1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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